소중한 발자취의 시작,
제 1회 아마추어 피아니스트를 위한 PoAH 피아노 콩쿠르

  작년 11월 이맘때 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교수님께서 한껏 들뜬 목소리로 “아마추어를 위한 피아노 콩쿠르는 어떨까?”라고 불쑥 말씀을 꺼내셨던 것은요. 전공자를 위한 콩쿠르에 익숙해져 있던 터라, 교수님의 제안이 제게도 꽤나 신박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2번 내지 프랑크의 <프렐류드, 코랄과 푸가>를 일상의 낙으로 연습하며 1주일에 한 번은 음악회에 참석하곤 했던 열정적인 화학과 후배가 떠오르기도 했고, 회사원이지만 매력적인 화성들을 건반 위에서 탐닉하곤 했던 친한 지인도 불현듯 스쳐지나갔습니다. 하지만 음악을 즐기는 것과 직접 무대에서 연주하는 것 사이에는 일말의 괴리감이 있기 때문에 사실 반신반의하는 마음도 제게 없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올해 들어 팬데믹으로 PoAH의 야심찬 연주회들이 줄줄이 연기 혹은 취소되면서, 아마추어 콩쿠르의 개최도 불투명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넉 놓고 아무것도 안할 수 없다는 임원들의 자성의 목소리가 있었고, 결국 소독과 방역을 철저히 하여 콩쿠르만큼은 개최하자는 쪽으로 의견을 굳혔습니다. 콩쿠르 전단을 만들고서는 막상 어디서부터 홍보를 시작할지조차 막막했지요. 그리하여 PoAH는 우선 효과적인 동영상 홍보를 공략하기로 합니다. 지금 생각해도 마치 소설책을 읽는 것처럼 흥미진진한데요, 임원과 회원들은 줌(zoom)으로 만나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을 유지하면서도 오히려 함께 할 수 있는 가치를 어필하면서 콩쿠르 홍보영상을 제작했습니다. PoAH 회원이자 뮤라벨 대표 김태환 PD님의 각별한 손길로 탄생한 영상은 유튜브에 게시되고 곧바로 애호가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콩쿠르를 동영상으로 홍보한 사례가 있었을까요? PoAH는 실험적이고 유례없을 방법을 모색하며 미지의 세계로 하나 둘씩 발걸음을 떼고 있었습니다.

  “신청자가 없으면 어떡하지? 단 20명이라도 있으면 좋겠다.” 이렇게 마음을 졸이고 있던 중, 드디어 하루에 한 두건씩 콩쿠르 신청서가 접수되기 시작했습니다. 예상보다 각계각층의 분들께서 참여의사를 전달해 오시자, 저희는 기쁨의 반색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회사원, 선생님, 변리사, 공무원, 주부, 컴퓨터 프로그램 연구 개발자, 프리랜서, 편의점 캐셔, 소설가, 제약회사 사무직, 외식업가, 정신과 의사, 학원 대표, 피아노 조율사, 치과 의사, 취업준비생, 콘텐츠 기획자, 수능관련 교육업자, 빅데이터 분석가, 전자회사 연구원 등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직업의 아마추어 피아니스트 분들께서 호응해주셨거든요. 대학생 가운데는 컴퓨터공학과, 전자공학과, 기계공학과, 인공지능 등 이과 계열 학생들의 약진이 두드러졌습니다. 특별히 PoAH 콩쿠르의 신청서에는 피아노를 배운 경험을 적는 난이 마련되었는데, 때로는 음악에 관한 본인의 소회를 담담하게 적어주셔서 저희에게 은근한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경우도 적잖았습니다.

  드디어 콩쿠르 당일. 경연장 및 연습실을 협찬 받은 하츠아트홀에 집결하여 장소를 소독한 후 각자 상기된 얼굴로 맡은 역할을 재확인했습니다. 어려운 상황 가운데 흔쾌히 나와 주신 참가자 분들을 위해 PoAH 로고가 새겨진 소정의 기념품을 마련했고, 본인의 연주 영상을 받아보실 수 있도록 카메라 녹화를 세팅했습니다. 안전을 위해 콩쿠르는 비공개로 진행되었는데, 가족이나 지인 분들의 아쉬운 마음을 달래드리고자 참가자의 동의하에 인스타그램으로 경연을 라이브 방송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끝난 게 아닙니다. 연주뿐만 아니라 PoAH는 더욱이 참가자 분들과 짧게나마 대화하며 소통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연주만 끝낸 채 보내드리기란, 못내 아쉬웠던 거죠. 무대에서 연주한 소감이 어떠신지, 본업이 있는 와중에 어떻게 준비하셨는지, 어떤 면을 중점적으로 표현하려 하셨는지 등을 바탕으로 한분씩 미니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마스크를 쓰기는 했지만 서로의 두 눈을 마주한 짧은 순간동안 무언의 열정과 열기, 그리고 음악을 향한 순수한 경외가 오롯이 전해졌습니다.

  첫 번째 콩쿠르를 무탈하게 마치고, 이제 PoAH에게 남은 건 부상으로 내건 입상자 연주회였습니다. 연주곡목은 경연곡으로 한정짓지 않았으며, 희망할 경우 PoAH 연구회의 전문 피아니스트와 함께 듀오 곡을 연주할 수 있는 기회도 마련하였습니다. 어쨌든 콩쿠르와 연주회는 또 다른 무대이지요. 본인들의 이름을 내건 산뜻한 디자인의 포스터까지 제작되자, 입상자 분들은 설렘과 흥분 속에서 연습에 더욱 매진하셨습니다. 연주회를 일주일여 앞두고는 주희성 교수님께서 입상자들을 대상으로 직접 공개레슨을 개최하여 모든 스테이지를 꼼꼼하게 체크하셨지요. 마스터클래스는 9명 전원이 참석했기 때문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행군을 계속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덕분에 입상자들은 교수님의 귀한 가르침에 고무되었고, 인자하고 따스한 배려에 감화를 받았습니다. 한분은 아이패드로 레슨을 녹화할 만큼 교수님의 설명을 세심하게 경청하고 담아두려 했으니까요.

  아마추어 피아니스트가 연주하는 음악회, 상상이 되시나요? 저도 이번 연주회를 보기 전까지 감히 생각하기조차 어려웠답니다. 코스모스아트홀과 하노버음악연습실이 협찬한 ‘제 1회 PoAH 아마추어 피아노 콩쿠르 위너스 콘서트’에 출연한 연주자들은 음악으로 관객과 만나는 순간순간마다 갈고닦은 예술 혼을 최선으로 발현하였습니다. 베토벤 <듀엣을 위한 소나타>와 <템페스트 소나타>, 쇼팽 <폴로네즈 판타지 Op.61>, 차이코프스키 <꽃의 왈츠>, 리스트 <라 캄파넬라>, 슈베르트 <방랑자 환상곡>과 <듀엣을 위한 판타지 D.940>까지, 이미 낯익은 곡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마추어 피아니스트의 손끝에서 흘러나오자, 저는 마치 낯선 음악을 듣는 것 같은 묘한 체험을 하게 됩니다. 이런 건 참 형언하기 어려운데요, 아마추어 피아니스트만이 갖는 생명력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들이 빚어내는 음악은 모든 패시지를 호기심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스스로 의심을 품지 않으며, 솔직하고 꾸미지 않은 열정이 살아 숨쉬는, 그런 인상이었습니다. 음악은 입체적으로 매번 풍부하게 넘쳐흘렀지요. 일말의 진부함을 찾아볼 수 없이, 온전히 음악자체에 젖어들어 있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어린 아이와 같은 마음’이 느껴졌다면, 적절한 비유일까요..

  연주회에 이어 시상식까지 마친 후, 그 날의 잔향은 제게 여전히 각별하게 남아있습니다. 계획들이 대부분 취소되고 갈피를 못 잡을 때, 처음에는 눈치도 보며 조심스럽게 준비한 행사였습니다. 그러나 진심으로 호응해주신 모든 분들 덕분에 저희의 근시안적인 걱정은 눈 녹듯이 사라졌습니다. 그분들에게 오히려 더 많이 배울 수 있었고, 뜨거운 열기에 힘입어 모든 행사를 성황리에 마칠 수 있었습니다. 음악을 즐기고 싶은데 단지 기회조차 없던 환경에 대한 아쉬움, 참가자 분들이 보여주셨던 온기어린 애정, 아마추어도 무대에서 연주할 수 있다는 자긍심, 그리고 이 모든 작업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해 나가는 희열, 이러한 원동력이 한 데 모여 앞으로 아마추어 아티스트를 위한 PoAH 콩쿠르를 이끌어갈 거라고 생각합니다. 전공자와 비전공자의 경계를 허물고 소통할 수 있어 행복했고, 뜻하지 않게 값진 경험을 하게 되어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감히 말하자면, 숱한 음악회들 가운데 음악적으로 특별했을 뿐더러 저에게는 가장 즐거웠던 음악회였습니다. 내년에는 또 어떤 소식으로 PoAH 뉴스레터의 한 켠을 채우게 될지, 벌써부터 새로운 여정이 무척이나 기다려집니다.

포아 피아노연구회 총무 신민정 (학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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