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아 에튜드 기획연주 리뷰

  이제 막 탄생 2주년을 맞은 포아피아노연구회가 올해 어떤 특별 연주를 준비하면 좋을지 첫 회의가 열리던 날, “etude 전곡 연주에 도전해볼까?”라는 주희성 교수님의 제안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던 임원진의 반응이 생생합니다. 사실 저는 처음엔 기대 반 걱정 반이었습니다. 분명히 관객들, 특히 에튜드를 한창 연습하고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는 상당히 흥미로운 프로그램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과 동시에, 피아니스트에게 “etude”라는 단어가 주는 중압감과 부담감이 상당하기에 4회나 되는 에튜드 대장정을 잘 마칠 수 있을지 걱정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임원진 회의가 끝난 후, 포아 회원들에게 에튜드 기획연주에 대해 설명하고, 가능한 레파토어 목록을 받아본 후 “역시 포아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당하게 “전곡”이 가능하다고 밝혀주신 선배님을 비롯하여 많은 회원들이 연주 참여 의사를 밝혀주었습니다. 아직 유학중이거나 해외 스케줄이 있어 연주에 참여하지 못하는 회원들도 있기에, 인원이 많이 필요한 이번 기획연주는 아무래도 학부생 후배들(PoA)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다는 의견도 반영되었습니다. 연주자들이 모두 정해지고, 우인아트홀의 배려와 도움으로 대관절차와 준비가 순조롭게 진행되었습니다.

  허나 슬프게도 2020년은 늘 마스크와 함께였고, “사회적 거리두기” 로 인해 연주, 공연활동은 미뤄지고 취소되기 일쑤였습니다. 너 나 할 것 없이 우리 모두에게 힘든 한 해였고, 무대에서 관객들과 함께 소통할 순간만을 기다리며 답답한 방음방에서 외로운 시간을 견디는 연주자들은 더더욱 낙심할 일이 많았겠지요. 첫 번째 전곡 연주 타자였던 라흐마니노프 에튜드 전곡 연주는 결국 연주 날짜가 한 달 즈음 밀리고, 거리두기로 인해 관객석을 50명으로 제한하며, 철저한 방역 조치 속에 7월 25일 우인아트홀에서 첫 걸음을 떼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연주를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는 연주자들과, 방역으로 인해 조금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야함에도 연주를 직접 보고 들을 수 있다는 것에 기뻐하는 관객들이 함께 한 소중한 무대였습니다.

 라흐마니노프 에튜드 전곡 연주를 감상하며 저는 약간의 충격을 받았습니다. 입시나 시험곡으로 자주 연주되는 빠르고 강한 인상의 몇 곡을 제외하고는 덜 친숙한 곡들이 꽤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기회가 아니었다면 평생 한 번도 제대로 들어볼 기회가 없는 곡도 있었을지 모릅니다. 쇼팽의 에튜드는 24개가 고르게 잘 알려진 반면, 라흐마니노프 에튜드는 그렇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웠고 그렇기에 이런 기획 연주가 더욱 의미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리허설 직전까지 연습을 많이 못했다며 불안감을 내비치던 회원들은 무대에서 모두 자기의 색깔을 여실히 드러내 보여주었습니다. 기교적으로 어린 학생들에게 뒤지지 않는 건 물론이고, 자기 자신만의 해석과 상상력을 녹인 여유 있는 연주가 인상적이었습니다. “회화적” 연습곡이라는 말이 참 잘 어울리는, 라흐마니노프 에튜드 전곡 연주를 통해 우리는 총 17곡의 개성 강한 그림을 그리며 첫 번째 에튜드 전곡연주의 포문을 성공적으로 열 수 있었습니다.

  8월 29일에 예정되었던 두 번째 연주인 chopin etude 전곡 연주는 코로나가 더욱 기승을 부리며 결국 유튜브 녹화 연주로 대체가 되었습니다. 연주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온도와 울림을 온전히 전달할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이지만, 발전된 매체를 통해 각자의 자리에서 제한적으로나마 훌륭한 연주를 향유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낍니다. (유튜브 PoAH & PoA 채널에 다양한 연주가 업로드 되어있으니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려요!)

  그리고 바깥 공기가 유난히 겨울처럼 싸늘했던 10월 24일, 세 번째 기획연주인 리스트 에튜드 전곡 연주가 진행되었습니다. 사실 리스트 에튜드는 기교 과시적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는데, 이 날 연주를 통해 리스트 에튜드의 서정성을 다시금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순례의 해, 소나타, 발라드 등의 곡들을 통해 느꼈던 리스트의 음악이 에튜드 곳곳에 숨 쉬고 있었고 덕분에 리스트 에튜드를 들으며 여러 가지 꿈을 꾸었습니다. 사랑, 행복, 슬픔, 분노 등의 다양하고 극적인 감정이 음악 속에 아스라이 녹아들어 있었고 화려한 기교에도 그러한 정서가 묻히지 않고 온전히 전달되었습니다. 실제로 이 날 굉장히 몸이 피곤하고 지쳐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연주를 통해 수많은 꿈을 꾸고 난 후 푹 잠을 자고 일어난 듯 개운하고 행복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내가 에튜드를 공부하고 연주할 때와 무대에서 듣는 에튜드가 사뭇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곡을 테크닉에 얽매여 순간순간 만끽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에튜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선물 받은 날이었습니다.

  이 선물 같은 에튜드 기획 연주가 아직 한 차례 남아있습니다. 부조니, 드뷔시, 리게티, 스크리아빈, 스트라빈스키, 바르톡의 에튜드를 한 자리에서 들어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제가 이전의 에튜드 연주들을 통해 새롭게 발견하고 만끽했던 에튜드의 매력을, 이 날 많은 분들이 함께 만나 누리고 가시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이토록 멋진 연주를 기획하고 하나하나 빠짐없이 신경써주신 주희성 교수님과 임원들, 멋진 연주를 준비한 연주자분들에게 진심으로 존경을 표하며, 2021년에도 포아가 그려갈 우리만의 그림이 무척이나 기대가 됩니다.

포아 피아노연구회 서기 이예나 (학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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