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랴빈을 좋아하세요?’
이 문구는 프랑스 소설 제목을 패러디해 본 것인데, 충분한 매력에도 불구하고 베일에 싸여있던 작곡가 스크랴빈을 포아는 대망의 두 번째 정기연주회 테마로 선정했습니다. 음악회에 앞서 한 시간 가량 렉처를 맡아주실 음악학자 이희경 선생님을 초빙했고, 이후 스크랴빈의 왈츠, 프렐류드 Op. 11 사이클 전곡, 소나타 셀렉션으로 짜여 진 심도 깊은 연주 프로그램을 편성했습니다. 더불어 졸업생 PoAH에 이어 학부생 PoA가 그 외 스크랴빈 작품들, 즉 에튀드, 즉흥곡, 마주르카, 녹턴, 전주곡, 왈츠, 시로 구성된 프로그램을 익일 연주하는 ‘스크랴빈 하이라이트’ 대장정을 기획했지요. (당시 폭풍 예보 때문에 PoA 연주는 일주일 연기되었던 것을 PoAH & PoA는 기억할거예요)
19세기 초반 대중음악회가 본격적으로 부흥할 무렵, 음악회 유형은 대중을 위한 행사와 전문가들에 의한 사적 모임으로 양분화 되는 추세에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200년 전부터 음악회 프로그램은 타깃에 맞춰 성격을 매번 달리했던 것이지요. 프로그램의 전환은 음악회마다 꽤나 유동적이었는데, 제 2회 포아 정기연주회 <20세기 피아노의 시인, 스크랴빈>은 대중에 앞서 우선 음악 전공자 및 포아 멤버들을 위한 밀도 높은 자양분을 제공했습니다. 현대음악 프로그램이 아니라면, 이렇게 시리즈로 강의와 연주가 한 자리에서 펼쳐지는 경우도 드물 것입니다. 때문에 이번 연주회는 음악가 스스로에게 각별한 자리이자, 지적 호기심을 한껏 충족할 수 있는 귀한 기회를 마련했습니다.
이희경 선생님은 다채로운 사진과 영상들로 스크랴빈의 삶과 음악세계를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이셨습니다. 막연하게 여겨졌던 작곡가의 존재는 자세한 설명을 통해 뚜렷한 윤곽으로 다가왔고, 신비화음, 조성과 무조성의 경계, 색광 오르간 등 일생을 통해 끝없이 쇄신한 일련의 행보는 여전히 깊은 영감을 던져 주었습니다. 제 2부 연주회 역시 매순간 관객의 농밀한 집중도를 요했는데, 포아 회원들은 스크랴빈의 신비롭고 미묘한 미학을 가감 없이 펼쳐냈습니다. 모든 연주는 개성을 달리했지만, 그들의 주의력만큼은 스크랴빈이라는 구심점에 모아졌습니다. 초기부터 말기까지, 소품에서 대규모 소나타에 이르기까지, 스크랴빈의 음악은 포아의 손가락 끝에서 약동하고, 춤추고, 감정의 황홀경 내지 카타르시스를 내뿜으며 마지막 스테이지 <검은 미사>를 향해 진화해 갔습니다.
순수학문과 실용 학문 사이에는 적절한 조화와 긴장관계가 유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 2회 정기연주회 <20세기 피아노의 시인, 스크랴빈>을 통해 포아는 추구하고자 하는 학문의 정통성을 유감없이 보여줬고, 진실 되고 순수한 지적 호기심에 화답할 단단한 초석을 닦았습니다. 앞으로도 포아의 제 3회, 제 4회 정기연주회가 기대되는 이유입니다.
포아 피아노 연구회 총무 신민정 (학 02)